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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 서평

그 날 느낀 그대의 온도, 언어의 온도

by 사일로 2020. 3. 10.

언어의 온도 (이기주)

 

 

"언어의 온도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?"

 

"음... 잘은 모르겠지만, 상대방에 말한 마디에 가슴이 시렸던 적도 있었고 따듯해졌던 기억도 있는 것 같아요."

 

"언어에는 저마다 나름의 온도가 있어요.

용광로 같이 뜨거운 말은 상대방에게 화상을 입히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은 마음을 얼게 합니다."

 

"그래요, 언어에는 저마다 나름의 온도가 있는 것 같아요."

 

 

 작가는 이 책을 숲을 거닐 듯,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라고 권유한다.

하루 종일 시달려서 먹먹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두어 편 곱씹으며 천천히 읽으면 좋을 것 같다.

천천히 숲을 거닐라는 작가의 권유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는 책을 잡고 그 자리에서 논스톱으로 다 읽어 버렸다. 

그냥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. 작가가 그렇듯 나도 활자중독의 성향이 있어서 인 걸까, 아니면

한동안 허했던 마음을 채워주는 글귀가 마냥 고팠던 것일까.

 

이 책은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.

그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'경비 아저씨가 수첩을 쓰는 이유'이다.

 

경비아저씨는 치매가 진행되는 중이다. 그런 경비 아저씨는 수첩에 이런 내용을 눌러 적는다.

 

우리가 처음 만난 날 4월 23일 

마누라 생일 2월 17일

 

당신을 만난 때 4월 23일

당신 태어난 날 2월 17일

 

하루를 가장 젊은 날로 받아들이기로 한,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중요한 날은 잊지 않기로 다짐한 

아저씨의 메모다.

꾹꾹 눌러 적은 그 언어의 온도는 나에게 가슴 뭉클한 따뜻함을 전했다.

 

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. 

정성스럽고 세심한 말한 마디는 아픈 사람을 치유하기도 하고, 가시 돋친 말은 사람은 병들게도 한다.

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인가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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